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
현대감각으로 음미
수시로 컴퓨터와 모바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여러 정보를 얻고 배우며
여러 사람과 SNS로 소통을 하니 이 어찌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내가 올려 놓은 글을 보고 여러 친구들 , 심지어는 이국 만리에 떨어져 있는 친구들 까지도
나의 집(홈페이지, 블러그,카페, 페이스븍의 담벼락)을 방문하여 의견을 교환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설사 나의 글을 보고 ,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악플)을 하여도, ‘좋아요’ 클릭이
많지 않드라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 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자 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人不知 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인불지 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논어의가장 처음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은 너무나 유명한 글이라 달리 주석을 달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원문대로 , 우리가 배운대로 그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나를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면 ,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냐?
그런데 이 글을 배울때는 그러려니 했는 데 자꾸 접하다 보니 해석에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여러 번을 읽어 내 나름대로 정리하였습니다.
지금 까지의 풀이와 그기에 따르는 내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기쁜 것 까지는 좋은데,
갑자기 친구가 찾아오는 것이 즐겁고, 또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다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이렇게 하고 보니 무언가 연결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學而時習之의 學은 배운다,공부한다라고 볼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꿰뚤어 진리를 아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즉 공부한다는 말은 마음을 닦는다 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즉 불교에서 생각하면 참선과 같은 것..
有朋이 自遠方來는 ‘멀리서 친구가 찾아온다는 개념이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같이 공부하니’ 로 나는 봅니다.
마지막으로 人不知 不慍이면 의 뜻은 같이 공부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거리끼지 않는다.로 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한번 더 전체적으로 음미를 하면
때때로 사물의 이치(본질)에 대해서 공부를 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더물어 마음맞는 친구들이 있어 같은 길을 가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고
설사 중도에 그만 두는 친구가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갈길을 가는 사람은 진정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나의 짧은 재주로 이렇게 읊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