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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치지

단석산 2018. 6. 21. 17:40

대학.. 제5장.. 격물치지(격물치지)


치지(致知) 
재격물자는(在格物者는) 
... 언욕치오지지인댄(言欲致吾之知인댄)
재즉물이궁기리야라.(在卽物而窮其理也라.)

앎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에 있다는 것은,
나의 앎을 철저하게 하고자 한다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남김없이 밝히라는 것이다.


격물치지... 결국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세워 앎을 철저히 한다는 것이다. 예전 한나라시대의 유학을 훈고학이라고 한다.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유학의 교과서는 사서가 아니라 오경이었으면, 그때만 해도 공자나 맹자는 참고서일 뿐이었지 주요 교과서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송나라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상적으로 일대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동안 오경이 천자와 귀족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들이었다면, 새시대 송나라에 들어와서는 문헌중심의 유학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념중심의 문학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동안 경전의 한마디조차 비판하기 어려웠던 환경에서 이제는 자유롭게 비판하고 현실에 도움이 되는 학문의 실천적 방향으로 중심이 모아진다. 그리하여 심지어 유교 경전을 고치거나 보완하는 대담한 변혁이 시작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 송나라의 주희는 대담한 변혁을 시도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공자 맹자를 기본으로 하여, 예기의 한 부분인 대학, 중용을 뽑아내어 주요과목으로 정하여 공자, 맹자, 대학, 중용을 중심으로 한 교과서인 사서가 태동이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한나라에서 당나라까지의 유학을 훈고학, 원시유학이라고 한다면, 송나라의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을 신유학이라고 한다. 이 신유학이 오늘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성리학인 것이다.

특히 주희는 아주 혁명적인 시도를 대학에서 하게 된다. 대학의 원래의 내용은 예기에서 뽑은 일부분인데, 주희는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내용이 대학원문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격물 치지 구절을 스스로 지어서 보완하였다. 격물치지 구절이 이렇게 유학적 학문의 대변혁의 시도에서 중요한 핵심역할을 하였다는 점이 참으로 경이롭다. 이렇듯 성리학에서는 사물의 이치와 본질을 리(理)라고 규정하고 이 리의 궁극에 다다르는 궁(窮)... 즉 궁리(窮理)를 기본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렇듯 철학이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뛰어넘은 것은 지금 시절에서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시대에서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개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철학이라면, 그 개념이 성장해 나가는 것이 철학이 나아가는 방향인 것이다. 

논어의 구절에...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가 是知也니라 (지위지지요, 부지위부지가 시지야니라) 라는 구절이 있다. 즉, 아는 것이 아는 것이요, 모르는 것이 모르는 것이다. 아는 것은 알면 되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란 것을 알면 된다. 앎과 모름을 안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할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을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고 산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격물치지를 하게 된다면 정말 현명한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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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치지는 사물의 이치나 원리를 명확히 알아서 처신한다는 주자학파의 이론과,
그 와는 다른 주장을 한 양명학파의 물(物)을 사람의 마음으로 보고 자기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서 참 마음을 회복한다는 2가지이론이 있다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양명학파의 이론에 더 비중을 두고 싶습니다.
양명학파의 주장에 따른다면 격물치지란 결국 불교의 수련수단인 참선(參禪)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륙을 누비는 와중에도 좋은 공부를 하게 해준 (홍)길순 님에게 감사 !!!

성철 스님의 시 한수 올립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읍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 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읍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 하므로 종말이 없읍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 하여 헤메고 있읍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문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세상을 구원하러 오신것이 아니라
이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려쳐 주려고 오셨읍니다,
이렇게 크나큰 진리속에서 살고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